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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다큐 공감 188회 '북촌 90년의 유산' 방송 소개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최초의 내집마련 주택금융,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정세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익선동 166번지, 조선왕족 종친 이해승 소유의 누동궁 68채의 서민용 한옥으로 재탄생, 정세권 한옥 설계도, 다큐공감 위치, 전화, 내레이션 엄현경 나레이션 )

지난 방송 '달려라 피아노' 보셨나요?

개인적으로 꽤 인상적으로 보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 방송 '북촌 90년의 유산' 역시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주 내용은 '건축왕 정세권 조선 최고의 건축사 건양사 대표 한옥,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사건, 기농정, 최두호 이재성, 익선동 166번지 북촌 한옥마을' 이라고 하네요.

준비 많이 했다고 하니깐요, 방송 절대 놓치지 마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포스팅하였습니다. 즐감하시길 .. ^^

편성 : KBS1 (토) 19:10 


600년 서울 역사의 상징, 북촌

북촌 한옥마을에 숨겨진 비밀

일본 주택은 절대 지을 수 없다!

일제의 북촌 진출을 막아라!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한 건축왕

북촌 한옥마을의 숨은 역사

북촌, 90년의 유산

 

- 북촌, 90년의 유산

- 내레이션 : 엄현경

 

- 첨단의 고층 건물 가득한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전통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 600년 서울 역사를 상징하는 북촌 한옥마을.

- 매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만 100만여 명으로

- 전 국민 아니 세계인이 열광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북촌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 북촌에 숨겨진 비밀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파헤쳐봅니다.

 

-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

- 조선 서민을 위한 근대 한옥 집단 지구! 북촌

- 1920년대 인구가 폭발하면서 도시계획을 공표한 일제.

- 조선 왕조 600년에 걸쳐서 전통적인 조선인들의 중심지였던 청계천 이북에서,

- 조선인을 몰아내고 일본인의 경성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었습니다. 

- 조선의 서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북촌에서 쫓겨나 빈민으로 전락해갔습니다. 

- 이러한 일제의 도시 개발에 정면으로 저항한 사람이 있었으니, 

- 당시 조선 최고의 건축사인 건양사의 대표 정세권이었습니다.

 

- 얼마 전 북촌 한옥마을에 북촌을 지키고자 한 

- 기농 정세권 선생의 노력을 기리는 특별한 정자가 하나 들어섰다. 

- 기농정 설계에 참여한 두 명의 젊은 건축가 (최두호, 이재성) 

-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10여년 이상 활동한 젊은 건축가들이 

- 정세권의 흔적과 그가 남긴 한옥들을 찾아다니며 

- 그 속에 담긴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 발굴하였습니다.

 

- 일본 주택은 절대 지을 수 없다

 

- 조선 서민을 위한 조선집을 짓다. 근대 한옥 건축왕

- 정세권의 건양사는 1929년 한 해 경성에서 지어진 한옥의 15~20%를 건설할 만큼 

- 건축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당시 일제는 끊임없이 탄압하며 일본식 주택을 지을 것을 강요했으나 

- 정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민지 조선 서민을 위한 도시형 한옥을 건설했습니다.

- 그는 단순히 서민 주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 서민들을 위한 최초의 내 집 마련 주택 금융을 제공했습니다. 

- 한옥을 분양한 후 분양 대금을 입주 전 일시에 받는 대신 입주 후에 월 단위로 받은 것이었는데요. 

- 오늘날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서민 주택 구입 지원 금융 정책이 

- 놀랍게도 이미 1920년대 한 개인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 100여년 전, 엄혹한 일제 치하 시대를 앞선 주택 금융 제도는 조선의 서민을 살리겠다는

- 민족정신의 발현이자 조선인의 경성을 지켜내기 위한 항일 투쟁의 일환이었습니다.


- 만해 한용운, 건축왕에게 감사하라 한 이유는?

-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황금기를 이끈 숨은 주인공

-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근대기업을 일으켜 자주 자립 경제를 수립,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 우리 민족의 경제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조선물산장려운동. 

- 그러나 1923년 기세를 올리던 조선물산장려운동 불과 1년 만에 

- 극심한 재정난과 세력 분열로 인해 대침체기에 빠졌습니다.

- 이에 정세권은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로 취임하면서 물산장려회의 재정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고

- 사비를털어 물산장려회관을 건립하였습니다. 

- 재정적 지원부터 실제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세권의 총력 지원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은 

- 단순한 조선 물산 소비 촉진 차원에서 벗어나, 대폭 확대되며 최고의 황금기가 도래합니다.

 

- 사전 완성을 일생의 사업으로 삼겠소.

- 조선물산장려회 이후, 정세권은 목숨을 건 민족운동에 투신합니다.

- 가장 먼저 서울 화동 129번지 2층 양옥 한 채를 조선어학회 회관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 조선어 큰사전 출판을 위한 지원 등 다양한 재정적 기여를 아끼지 않는데요. 

- 이 조선어학회 회관은 단순한 조선어학회 활동 기지가 아닌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 독립운동 투사와 독립 이후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삼고자했습니다.

- 일제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오른 상태였던 

- 정세권의 이러한 활동에 대한 대가는 모진 고문과 재산 강탈이었습니다.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된 정세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고문도 모자라 

- 3만 5천평 서울 땅을 빼앗기는 등 재산의 대부분을 강탈당하게 됩니다.

 

- 처절한 항일 투쟁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정신이 서려있는 북촌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 익선동 한옥마을은 약100년정도 된 한옥들로 깊은 운치가 느껴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입니다. 

- 이 곳에서 정세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익선동 166번지.

- 익선동에서 그가 만든 한옥은 전통 한옥을 상당 부분 변형한 것이었습니다. 

-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수도와 전기가 들어왔고, 환기와 일조권 등 구조에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 또 행랑방과 장독대, 창고의 위치를 실용적으로 재배치하고,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 처마에 잇대어 함석챙을 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 이처럼 그의 한옥은 20세기형 생활 방식을 고려해 설계된 퓨전 한옥이었습니다.

- 정세권은 자신의 이상적 가옥을 꿈꾸며 주택개량을 위한 실험을 계속 하였습니다. 

- 실제로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며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 그 안에서 서민을 위한 행보도 이어졌는데요. 

- 조선왕족 종친이었던 이해승 소유의 누동궁이 정세권을 통해 68채의 서민용 한옥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 한편 정세권의 발자취를 따라온 후배 건축가 두 사람은 오래된 문서 속에서 정세권의 한옥 설계도를 발견합니다. 

- 아쉽게도 설계도는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는데요 

- 정세권의 발자취를 따라온 후배건축가 두 사람이 <다큐공감>에서 재연에 나섰습니다. 

- 그가 꿈꾸었던 한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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